제 3계 차도살인

 

문자 그대로 간단 명료한 계책입니다.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 CSI 등의 수사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상황중에, 다른 사람의 총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지문은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 죄를 억울한 총 주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 같은거 종종 나오죠? 말 자체로 읽으면 그런 경우를 떠올리면 되는데... 엄밀히 말해 삼십육계의 차도살인은 도구 그 자체를 빌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행위'를 '빌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옮기자면 사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사람을 죽인다' 라고 하는 쪽이 이해가 빠를 것 같군요.

 

아무리 병법이라지만 유독 이 계책이 굳이 '살인'이라는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 계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간계(奸計)라는거죠.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계책이지만 썩 정정당당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유독 이 계책이 이렇게나 강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계책의 핵심은 "자신의 힘이 부족하거나 혹은 아껴야 할 필요가 있을때 남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중국이 즐겨쓰던 소위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 차도살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은 명분과 실리를 챙기며 실제로 손에 피묻히는 일은 남이 맡도록 하는거죠.

 

유명한 예화로서 조조가 예형을 제거한 일화가 있지요. 삼국연의에서는 삼국지 위서魏書 (또는 위지) - 순욱전荀彧傳 을 바탕으로 조조가 예형을 만나던 때의 이야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형이 하늘을 향해 탄식하며 말했다. "천지가 넓다건만, 어찌 하나도 인물이 없는가!"

조조 왈 "내 휘하의 수십명은 모두 시대의 영웅이다. 어찌 인물이 없다고 하느냐."

(衡仰天嘆曰 天地雖闊 何無一人也 操曰 吾手下有數十人 皆當世英雄,何謂無人)


(중략)

예형 왈 "순욱은 초상집 문상과 병든 사람 문병이나 시킬만하고, 순유는 묘지기 노릇이 알맞을 것이오. 정욱은 관의 문지기로 삼아 관문이나 여닫으면 될 것이고, 곽가는 글이나 짓게 하면 좋을 것이외다. 장료는 북이나 치게 하고, 허저는 마소나 기르게 하며, 이전은 편지나 격문을 나르게 하면 될 것이고, 여건은 칼이나 벼리고 갈며, 만총은 술지게미를 안주로 술이나 마시면 되고, 우금은 널빤지를 지고 담장이나 만들 사람이요. 하후돈은 겉보기가 그럴듯하니 완체 장군이라 부르면 되고, 조자효는 인색하니 요전태수라고 이름하면 될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옷을 걸쳤으니 옷걸이요, 밥을 먹으니 밥주머니요, 술을 마시니 술독이며, 고기를 먹으니 고깃자루라 부르면 될 자들 뿐이외다."

 

첫 만남부터 이리도 까칠하던 예형을 조조는 곱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후로도 예형의 기행과 독설은 계속되었고, 결국 조조는 예형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가 되었는데 세상 인심이 두려워 자기 손으로 죽이지는 못하고... 유표에게 사신으로 보냅니다. 예형은 유표에게 가서도 독설을 퍼붓습니다. 유표도 울컥했지만, 조조의 계책을 눈치채고 성질이 급한 황조에게 보냅니다. 예형은 결국 황조의 손에 죽음을 맞습니다. 만약 조조가 예형을 직접 죽였다면, 조조는 인재를 몰라본 옹졸한 사람이라는 평을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유표 역시 마찬가지로서, 조조가 자신에게 맡기려던 '악역'을 황조에게 떠넘기는 차도살인의 계책을 쓴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계책은 현대에서도 흔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조의 예화와는 양상이 사뭇 다릅니다만, 일부러 누군가 악역을 맡음으로서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자에게 자백을 이끌어 낼 때, 두 명의 형사가 각각 다른 성격을 연기합니다. 먼저 한 사람(악역)이 들어가 호통을 치고 강경하게 몰아칩니다. 얼마 후 다른 형사(천사역)가 짐짓 악역 형사를 말리고 피의자를 이해하는 척 위로하며 달래어 마음의 경계를 풀게 하는 등의 방법 같은 것이죠. 어느 서적에서는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이것을 적용하는 사례를 들던데, 그렇게 Naive 하게 적용할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글 오픈소셜

 

구글이 추진하는 개방형 플랫폼 '오픈소셜'에 SK커뮤니케이션즈(싸이월드), 다음커뮤니케이션(Daum), KTH(파란), 네오위즈인터넷(세이클럽) 등이 참여한다는 소식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네이버와 추구하는 '개방'의 형태가 다를 1 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이것을 네이버 대 反 네이버 진영의 형성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여기에 적용하자면, 구글의 차도살인인 셈입니다. 합종연횡과는 차이가 있는게, 구글이 이 구도에서 직접적으로 회사대 회사로서 어떤 연합을 구축하고 지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용자의 편익을 위한 플랫폼의 개방이라는 명분을 취하면서 동시에 국내시장에서 네이버의 독주에 고심하는 타사들을 네이버의 견제에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지요. 그렇다고 이것을 극단적으로 여기에 참여하는 회사들이 구글에 이용당한다는거냐, 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오픈소셜이 국내전용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내 시장에 있어서는 구글이 직접적으로 네이버를 공격하기보다 기존에 이미 네이버와 경쟁하고 있고 오랜시간 직접 전선(戰線)을 맞대온 타사들을 움직여 네이버를 죄어들어가려는 듯한 모습으로 읽을 수도 있다- 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네이버 오픈캐스트

 

네이버의 오픈캐스트를 차도살인으로 읽기도 합니다. 한동안 언론사들과 네이버가 갈등을 빚었던 것,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언론사들의 불만은 이러했습니다. 네이버가 편집권을 행사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기사들이 네이버 페이지 안에서 보여지기 때문에 정작 언론사닷컴으로 트래픽이 오지 않으니 광고수익이며 페이지뷰며 네이버가 모두 독식하고 있다! ㅡ 네이버는 '뉴스캐스트'라는 이름으로, 접속자가 직접 구독할 언론사를 선택할 있게 한 동시에, 해당 언론사가 직접 메인의 자사 캐스트 영역을 편집할 수 있게 편집권을 열어줬습니다. 기본 링크를 네이버 내부 대신 해당 언론사닷컴으로 링크를 향하게 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네이버가 언론사들의 요구를 결국 수용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트래픽을 많이 받기를 원했을 뿐, 정작 그 몰려드는 트래픽에 대처하는 방법은 몰랐던 많은 수의 언론사닷컴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서버를 증설할 여력이 없는 언론사들은 더욱 상황이 심각하구요. 그 와중에, 사용자들로부터도 비난이 쏟아집니다. 네이버가 아닌 엉뚱한 사이트가 새 창으로 뜨니 불편하다면서요. 게다가 언론사닷컴의 유지를 위해 유치했던 광고들이 선정적이라는 비난까지 제기되면서, 네이버는 광고와 기사의 선정성등을 고려하여 불량언론사닷컴은 뉴스캐스트에서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합니다.

 

네이버는 어디까지나 뉴스컨텐츠의 공급자인 언론사들의 요구와, 그걸 소비하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절충하여 받아들였을 뿐 직접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습니다. 벌떼같이 달려들어 연일 네이버에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기사로 열을 올리던 언론사를, 자사에 방문하는 수많은 사용자들의 손을 빌어 잠재워버린 셈입니다.

 

 

결언

 

차도살인의 계책의 목적은 '자기 세력을 보존'하는것에 중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비록 간계일런지는 모르나, 현대의 '비즈니스'속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세력의 대소강약을 불문하고 때때로 고민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책략일 것입니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차도살인은 결코 일방적으로 남을 '쓰고 버리는' 이기적이고 얄팍한 술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극단적으로는 그런 예도 있겠습니다만은, 종국에는 자신의 명분을 스스로 깎아먹는 자충수가 수 있음을 인지하고 주의하여야 할 것 입니다.

 

 

※ 이 글은 2008년 7월 13일에 작성을 시작하여 2009년 6월 12일에 완료, 공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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