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람은 힘들때가 있다. 하지만 그 속마음을 덜 말할수록 강한 사람으로
비추어진다.
물론, 어차피 그 고통을 말로 옮긴다고 해서 누가 해결해
줄 것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조금은 후련하고... 그럴때 인터넷은
훌륭한 진통제가 되어준다. 아픔의 원인 자체를 해결해 주는 일은 없지만, 나아질
때까지의 고통을 피해갈 수 있게 해 주니까 ㅡ 통증의 원인은 대부분
시효를 갖고 있다. 시간이 약, 이라는 말은 잔인한 진리이다.
나무가
썩을 때에, 겉이 썩는 경우.. 비바람에 그 썩은 부위가 짓뭉개져 떨어져
나가든, 사람들이 그 썩은 부위를 잘라내주든 해결을 한다. 비록 아름답지 못하게
너덜너덜한 모습을 드러내긴 하지만. 하지만 속으로 썩어 들어가는 경우 ㅡ 고목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인데 ㅡ 겉보기에는 매끈하고 튼튼해보이며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 속은 썩고 또 썩어서 나중엔 텅 비어버린다. 수년전 마음의 고통에
괴로워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일화로 쓰이던 이야기인데, 아예 속이 그냥 썩도록
놔둬서 그대로 비워버리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고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잔혹한 이야기다. 고통을 표출하는건 꼴사나우니 그냥 마음을 죽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불안은 자살폭탄과 같이 소멸을 목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오랜시간 소멸하지 못한채 망령이 되어 마음을 목죄어
올때에 자학이 고개를 든다.
괴롭다, 라는 감정을 푹 썩은 타르와 같이 진동하는 냄새를 무시하고 게워내면, 식도가 위액에 젖어 잠시 괴롭겠지만 이내 속은 편안해질런지도 모른다. 멀미하듯 머릿속이 들떠 현기증마저 느낄때엔, 블로그에라도, 감정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왕은 절대 고민해서는 안된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해야
하며, 강철과 같이 굳은 의지로 뭉쳐진- 것 처럼 보여질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기대를 받아낸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때때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 모든 리더가 다 그렇게 강하고
위대할 수는 없는거 아냐? 나같은 사람들은 부족한 점을 부족하다 드러낸채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리더도 있을 수 있는거 아냐? ㅡ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죄수의 딜레마의 결과로 귀결되더라도 최후에는 이기적인 것이 인간의
본성. 누군가는 그 틈을 파고 들어 나의 목을 조를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한편으론, 이런 고민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나의 흔들림을
보이는 것일 것이다.
글쎄, 이것이 나의 적들을 mislead 할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 비수가 되어
나의 심장에 박힐 것인가.
빈 수레보단 반쯤 찬 수레가 더 요란하다.
설 배운작자들의 잘난체가 더 심하고, 졸부의 돈타령이 더 드센 법이다.
어설프게
뭔가를 얻기 시작한 나는, 진실로 많은 것을 지닌 사람들보다 더 많이
불안에 떠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어리구나.
누군가 "아니야,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라고 도닥여 줘야 마음이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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